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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

중세의 3차 십자군 전쟁 속 인물들

by 데이워쳐 2024. 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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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역사의 큰 장면 중 하나인 십자군 전쟁, 그 가운데서도 3차 십자군 전쟁과 참여한 중요인물들을 알아보려고 합니다.

 

crusade

십자군 전쟁의 전체적인 시대 배경

 

십자군 전쟁은 신앙이 그 무엇보다도 중요했고 왕부터 평민까지 모두를 지배한 중세 서양의 기독교 세계에서 기독교 성지인 예루살렘을 무슬림(이슬람) 들의 손에서 되찾기 위한 일련의 군사적 시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전쟁은 무려 9차례에 걸쳐 일어났으며, 정확한 시기는 11세기부터 13세기까지의 다수의 전투로 벌어졌습니다. 연도로는 1096년부터 1291년까지 보고 있습니다.

 

영화 ‘킹덤 오브 헤븐’과 십자군 전쟁

 

제가 십자군 전쟁, 그중에서도 3차 원정을 주제로 하여 알아보고자 한 것은 영화 ‘킹덤 오브 헤븐’을 감명 깊게 보았기 때문입니다. 영화의 배경은 정확히 말하자면 3차 십자군 전쟁 이전입니다. 예루살렘이 살라딘에게 넘어가고 있는 장면을 영화 속에서 다루고 있지요. 3차 십자군 전쟁은 넘어가고 탈환을 위해 일어난 전쟁이고요. 영화 속 주요한 인물 중 하나가 3차 원정의 원인 된 살라딘이기 때문에 3차 십자군 전쟁을 특히 알아본 것입니다.

 

3차 십자군 전쟁의 배경

 

십자군 전쟁은 1차부터 9차까지 앞서서 이야기한 것처럼 전체적인 배경은 하나입니다. 기독교 성지 예루살렘의 탈환이죠. 1169년 이집트의 파티마왕조의 실권을 장악한 살라딘은 파티마 왕조를 무너뜨리고 아이유브 왕조를 창시하였는데요, 그 후 1187년 예루살렘을 정복하게 됩니다. 그 소식을 들은 교황 우르바노 3세는 충격을 받고 죽었다고 알려졌으며, 우르바노 3세의 후임 그레고리오 8세가 십자군 원정을 요청하게 됩니다. 그 가운데 프랑스왕국과 신성로마제국 그리고 잉글랜드왕국이 중심이 되어 일으킨 전쟁이 3차 십자군 원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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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속 인물들

 

세 명의 인물만 간단하게 살펴보려 합니다.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프리드리히 1세, 프랑스 왕국의 국왕 필리프 2세와 잉글랜드 왕국의 국왕 리처드 1세입니다.

 

신성로마제국의 프리드리히 1세

 

먼저 프리드리히 1세입니다. 그는 강력한 권위를 가진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였으며, 이탈리아와 부르군트의 국왕이었습니다. 흔히 로마왕으로도 통했으며, 외모적 특징으로는 얼굴의 붉은 수염이 있었다고 하며, 그렇기 때문에 ‘바르바로사’라는 별명이 있었습니다. 프리드리히 1세는 3차 십자군 전쟁에서 다른 유럽의 왕들중에 가장 큰 규모의 병력을 이끌고 참전하였습니다. 당시 시대의 사람들 누구나 황제의 승리를 예상했지만, 목적지인 성지 예루살렘에 도착하기도 전에 소아시아 킬리키아에서 ‘살레프’라 불리는 강을 건너다 사망합니다. 전사한 것도 아니고 말입니다. 그의 사인은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나이로 인한 것인지, 심장마비였는지, 아니면 물에 빠져 죽은 것인지 말입니다.

 

잉글랜드의 리처드 1세

 

다음은 잉글랜드의 국왕이었던 리처드 1세입니다. 흔히들 사자왕이라고 부르던 리처드1세는 왕이라기보다는 용맹한 군인이며 기사였습니다. 잉글랜드에서의 제위기간이 겨우 6개월이었기 때문이죠. 리처드 1세는 중동에 도착한 이후, 아이유브왕조의 살라딘과 맹렬하게 맞붙었는데, 특히 할렌의 전투가 유명합니다. 무려 1년이나 싸웠으나 예루살렘의 탈환에는 실패합니다. 결국 살라딘과의 3년 휴전조약을 맺고 귀국하게 됩니다. 그는 같이 참전했던 다른 유럽의 왕들과 불화가 끊이질 않았는데, 신성로마제국의 하인리히 6세와 프랑스의 필리프 2세가 리처드의 동생 존을 국왕으로 올린다는 사실에 그는 서둘러 귀국길에 올랐으나 1192년 오스트리아에서 잡혀 유폐를 당하게 됩니다. 그는 2년 후 막대한 몸값을 내고 겨우 풀려나 잉글랜드로 돌아와 다시 국왕이 되었으나 1개월도 안돼서 프랑스로 출정합니다. 그리고 1199년 샬리성 공성전에서 전사하게 됩니다.

 

프랑스의 필리프 2세

 

필리프 2세는 프랑스왕국의 국왕입니다. 재위기간은 1180년부터 1223년 이며, 정치의 달인으로 권모술수에 능한 왕이었습니다. 필리프 2세는 처음으로 프랑스 국왕이라는 칭호를 사용한 왕입니다. 처음에 리처드 1세와 가까웠던 그는 함께 3차 십자군 원정에 동행했으나 정치적인 이유로 참전했던 그는 십자군 전쟁에 매우 소극적이었으며, 아크레 성 전투만 참여한 채 곧이어 프랑스로 돌아갔습니다.

 

3차 십자군 전쟁의 결말

 

3차 십자군 전쟁은 리처드 1세와 살라딘의 휴전 협정으로 종결됩니다. 3년의 휴전 협정이었으며 기독교 순례자가 예루살렘을 방문하는 것을 허락한다는 조건이었습니다.

 

 

지금까지 3차 십자군 전쟁의 배경, 과정 그리고 결말을 그 안의 인물들과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인물들의 소개는 그들의 업적과 생애를 많이 생략하며 십자군 전쟁 속 기간만 간략히 언급하였습니다. 이 왕들은 3차 십자군 전쟁에서 각각의 특징적인 행동으로 기록되었으며 이들의 활약은 중세 시대의 역사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말할 수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