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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

샤를 대제 (샤를 마뉴, 프랑크 왕국, 서유럽)

by 데이워쳐 2024. 5.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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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주제는 샤를 대제에 대한 것입니다. 샤를 마뉴는 프랑스 어로, 독일어로는 카를루스, 영어로는 찰스라고 합니다. 라틴어로는 카롤루스 대제(Carolus)라고 불렸다 합니다. 현대에는 보통 프랑스어로 샤를 마뉴라고 부르니, 밑에서부터는 저도 샤를 대제라고만 하겠습니다.

 

샤를 대제, 프랑크 왕국의 왕

샤를 대제(Charlemagne)는 8세기와 9세기에 활동한 프랑크 왕국의 왕이자 황제로, 그의 통치는 중세 유럽에서 매우 중요한 시기로 간주됩니다. 그는 768년부터 814년까지 통치하며 서유럽을 통합하고 문화와 학문의 부흥을 촉진하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샤를 대제는 800년에 로마에서 교황 레오 3세에 의해 로마 제국의 황제로 대관식을 받으며 이로써 서로마 제국을 부활시켰다고 여겨지기도 합니다. 그의 통치 아래 학문과 예술이 부흥하였으며, 이는 "카롤링거 르네상스"로 불립니다. 그의 사후, 프랑크 왕국은 그의 손자들에 의해 세 개로 나뉘어 결국 현대 유럽의 여러 국가의 기반이 되었습니다.

 

샤를마뉴, 샤를대제, 카를로스대제

서로마 제국의 황제 그 배경

앞서 말했듯이 프랑크 왕국의 샤를 대제는 800년에 로마 성베드로 성당에서 교황 레오 3세에 의해 로마 황제의 칭호를 받게 됩니다. 당시에 있었던 비잔틴 제국의 황제는 니케 포루스였습니다. 비잔틴 제국의 니케 포루스 황제는 로마 교황인 레오 3세에게 로마 교회에 있는 성상과 성화는 우상숭배이니 모두 없애라고 지시했습니다. 726년에 있었던, 성상파괴령 입니다. 문맹이 절대다수를 차지했던 시기에 이런 지시를 받을 수 없었던 로마 교황은, 교회 유지를 위해 거부했다고 합니다. 우선 이 이야기를 이어가기 전에 그전 배경을 알아보겠습니다.

 

교황은 로마 안에 있었습니다. 로마 근처에는 롬바르드 라는 게르만족의 왕국이 있었습니다. 롬바르드와 로마 사이에는 그전부터 갈등이 있었습니다. 로마 교황의 영토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교황령) 당시 프랑크 왕국의 왕이었던 피핀(샤를대제의 아버지)은 교황(스테파노 3세)의 요청을 받아들여 교황령을 확보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고 이는 교황과 프랑크 왕국 간의 관계를 강화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다시 샤를 대제 시기로 돌아와 이야기를 이어가겠습니다. 교황과 갈등이 있던 비잔틴의 황제가 교황과 좋지 않은 관계의 롬바르드 왕국을 부추겨 침공하게 하자, 레오 3세의 요청을 받은 프랑크 왕국의 샤를마뉴가 774년 롬바르드 왕국을 공격해 정복했습니다. 그 이후에 교황 레오 3세는  프랑크 왕국의 샤를 마뉴에게 로마 황제의 칭호를 내린 것입니다. 어찌 보면 로마와 전혀 상관이 없던 프랑크의 왕이 이런 정치적 문제로 서로마의 황제라고 불리게 된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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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유럽의 문맹 문제와 카롤링거 르네상스

앞서 성상파괴령 문제의 갈등이 정말 흥미로웠습니다. 당시 유럽의 사람들 대부분이, 글을 읽고 쓸 수 없으니 말이죠. 대다수의 사람들은 구두 전통에 의존하여 종교적 내용을 배웠다고 합니다. 성상과 성화도 큰 역할을 했고요. 카롤링거 르네상스는 샤를마뉴의 통치기간 중, 8세기말에서 9세기 초까지 유럽에서 일어난 문화적 부흥을 가리켜 말하는 표현입니다. 샤를마뉴는 궁정 학교를 설립하고, 교회와 수도원에 학교를 설치했습니다. 또 이 시기에 중요한 종교 서적과 고전 문헌이 이 시기에 필사되어 보존되었습니다. 이 당시에 로마네스크 건축 스타일이 발전하기 시작했습니다. 대표적인 건축물로 아헨 대성당이 있습니다.

 

프랑크 왕국의 분열과 현재의 유럽

샤를 마뉴는 814년에 사망합니다. 그의 사후 왕위는 경건 왕으로 불렸던 아들 루이 1세가 이어받습니다. 루이 1세의 아들들인 로타르, 샤를 발드(샤를2세), 루트비히 2세는 아버지였던 루이 1세의 생전부터 치열한 다툼을 시작했고, 결국 843년 베르됭 조약으로 프랑크 왕국을 3분할하여 나누게 됩니다. 현재의 유럽으로 보자면,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분할로 프랑크 왕국은 다시 하나로 통합되지 못했으며, 현재의 유럽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분쟁의 근원이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오늘은 샤를 대제와 프랑크 왕국, 당시 사건들 이렇게 간단하게 글을 써보았습니다. 프랑크 왕국이 서유럽을 통합한 만큼, 많은 적들과 사건들이 존재했는데 다 쓰고 싶었는데, 로마 황제 칭호 이야기 하나 만으로도 글이 길어서 포기했습니다. 다음번에는 당시 주변 국가, 세력들, 그리고 특히 비잔틴 제국에 대한 이야기를 써보겠습니다.